분묘기지권 이란 묘를 설치하고 보존해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권리 를 말합니다. 즉 묘가 설치된 땅을 점유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우리 조상님이 묻혔다는 이유로 땅 주인에게 "나에게 땅 이용권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법은 과거부터 내려온 관습법적 효력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분묘기지권이 성립하는 경우는 아래 세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땅 주인 허락을 받고 묘를 설치한 경우 (승락형)
2. 묘를 설치해둔 내 땅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면서 이장 합의를 따로 하지 않은 경우(양도형)
3. 땅 주인 허락 없이 묘를 설치한 뒤, 20년간 평온하고 공연한 상태로 유지된 경우(취득시효형)
가장 문제가 되는 경우는 3번입니다. 땅 주인과 묘지를 설치한 집안 사이에 가장 많은 갈등을 일으킨 3번유형은
2001년 1월 13일 장사법이 개정
되면서 조금 큰 변화를 맞았습니다.
"남의 땅에 함부로 묘지를 설치하지 말라"
는 규정이 새로 생긴 것입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7조
제 1항 : 토지 소유자, 묘지 설치자 또는 연고자는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분묘에 대하여 보건복지부령(시행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분묘를 관할하는 시장 등의 허가를 받아 분묘에 매장된 시신 또는 유골을 개장할 수 있다.
1.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해당 토지에 설치한 분묘
2. 묘지 설치자 또는 연고자의 승낙 없이 해당 묘지에 설치한 분묘
현재 장사법은 묘 설치 기간을 30년으로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1회에 한해 설치 기간 연장을 허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이 법이 시행된 2001년 1월 13일 전의 묘지들 입니다. 새 법이 시행됐으나, 201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1년 1월 13일 전에 설치됐다면 분묘기지권이 있다고 보는 것 입니다. 당시 전원합의체 다수 의견의 판결요지에 따르면 "오랜 기간, 사회구성원들의 법적 확신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유효하다고 인정해 온 관습법의 효력을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이나 사회질서의 변화로 인하여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부정하게 되면, 기존의 관습법에 따라 수십년간 형성된 과거의 법률관계에 대한 효력을 일시에 뒤흔드는 것이 되어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산림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산림 공유의 원칙'이라고 불리는 이 관습법은 개인 소유권은 없었지만, 산에 묘를 만들고 묘가 있는 동안에는 개인이 점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내용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임야 소유 제도가 생기면서 임야 조사를 실시해보니, 우리 조상 묘가 있는 곳의 땅 주인이 묘 주인과 서로 달라 혼란을 막기 위해
1927년 3월 조선고등법원은 "20년 동안 평온하고 공연하게 묫자리를 점유했다면, 다른 사람 땅이라도 지상권과 유사한 일종의 '물권'을 취득한다"
고 판결을 내립니다. 조선고등법원 재판부는 땅 주인 허락없이 묘지를 설치했더라도 이 논리는 적용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분묘기지권'을 인정한 것 입니다. 묘지를 설치한 사람이 따로 등기하지 않아도 '관습'에 따라 땅 주인에게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한 것 입니다.
관습이라고 본 이유는 종중이나 문중이 산을 소유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묘를 설치할 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조선시대에 공동묘지가 있었던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가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 땅에 시신을 묻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묘지를 설치한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증거 자료를 남겨두는 경우도 드물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조선고등법원이 위와 같은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분묘기지원의 이런
관습법적 성격은 1960년 우리 손으로 만든 민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이를수록 "우리 땅에 몇십 년째 다른 사람 시신이 묻혀 있는데 사용권을 언제까지 보장해줘야 하지? 우리는 묘지 설치를 허락한 적도 없는데"라는 의문점이 생기게 됩니다. 2001년 1월 13일 장사법 시행 전에 설치돼 분묘기지권이 인정된 묘지의 경우 특별한 약정이 없는 이상 당사자가 이장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분묘기지권이 계속 있다고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장사법 시행 전에 묘지를 설치한 다음 20년간 평온하고 공연하게 땅을 점유해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경우에도 땅 주인에게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는 아주 중요한 판결을 내립니다. 즉 토지 사용료를 묘 주인에게 부과한 것 입니다.
그 후 이러한 판결 후 땅 주인이 지료를 청구하는 소송은 꽤 늘었습니다. 똑같이 2001년 이전에 설치된 묘지라고 해도, 세가지 유형에 따라
사용료를 계산
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1. 땅 주인 허락을 받고 묘지를 설치한 경우(승락형)
: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때로부터 사용료를 계산
합니다. 법원은 땅 주인이 묘지를 설치하라고 허락할 당시, 사용료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지 부터 살펴봅니다. 만약 합의가 있었다면 땅 주인의 소유권을 승계받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만약 별도 합의가 없었다면, 법원에서 당사자 의사를 추정해 무상이나 유상을 결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래 땅 주인이 땅을 처분하기 전까지만 묫자리를 무성으로 쓰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두 번째 땅 주인에게는 지료를 줘야 한다는 판례도 있습니다.
2. 묘지를 설치해둔 내 땅을 다른사람에게 처분하면서 이장 합의를 따로하지 않는 경우(양도형)
: 이 역시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때로부터 지료 지급 의무가 발생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 땅에 선대 묘지를 관리하고 있는 A시가 땅이 경매에 넘아가 소유권이 B가 취득하게 되면, 두사람 사이에는 묘지를 이장하겠다는 별도 특약이 없어서 묘지만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럼 땅 소유권이 B에게 넘어간 순간부터 A는 자기 땅이 아닌 B의 땅을 사용할 권리, 즉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셈이 됩니다. 따라서 사용료 역시 이때부터 계산해야 합니다.
3. 땅 주인 허락 없이 묘지를 설치한 뒤에 20년간 평온하고 공연한 상태로 유지된 경우(취득시효형)
:
땅 주인이 사용료를 청구한 날부터 계산
이 들어갑니다. 따라서 땅 주인 입장에서는 빨리 청구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만약 이렇게
지료를 청구했음에도 불구하고,
2년 이상 연체
했다면
분묘기지권을 소멸
시킬 수 있습니다.
법원 판결로 사용료가 정해진 이후에도 상당기간 내지 않았고, 판결 확정 전후로 2년치 이상 사용료가 밀렸다면 분묘기지권이 소멸했다고 주장 할 수 있습니다.
분묘기지권은 바깥에서 묘지의 존재를 인식할 만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면 성립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땅 주인 입장에선 "무덤인 줄 몰랐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습니다. 벌초도 안하고 관리도 제대로 안해 주변에 수풀이 우거져 묘지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지도 못할 지경의 묘일지라도 묘지를 관리하는 가족들의 진술이나 주변 상태를 봤을 때 이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판결도 있습니다. 설치된지 70년 가까이 지나 잔디도 없이 커다란 흙더미처럼 변해버린 묘지에 대해서도 분묘기지권이 인정된 판례가 있습니다. 시신이 묻힌지 100년 이상이 지나 이미 토괴화(흙덩이화)됐으니 분묘기지권이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묘지는 묘지라는 게 대법원 판례입니다.
분묘기지권이 "후손의 관리 중단으로 자연히 소멸해 외부에서 인식할 수 없는 상태로 되기 전까지는 계속 존속한다
"
는게 법원의 해석입니다.
허가 없이 흙이 된 유골을 파내 화장한 다음 납골당에 모시고 상석과 둘레석은 그대로 뒀다면 재물손괴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도 모자라 민사소송에서도 패소한 사례가 있습니다. 더 이상 시산이 존재하지 않으니 분묘기지권이 없다는 걸 확인받으려는 소송이었는데, 재판부는 그래도 여전히 분묘기지권이 있다고 했습니다. "분묘 속에는 여전히 토괴화된 유골이 남아있을 것으로 보이고, 분묘를 연 상태라 무덤의 형태가 없어졌다 해도 납골당에 있는 항아리를 언제고 다시 묻어 원상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재판부는 "토지를 사용하게 할 의무를 지는 땅 주인이 분묘를 훼손해 분묘기지권이 소멸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정의관념에 반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장사법은 묘지의 점유면적을 1기당 30제곱미터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묘기지권이 적용되는 땅 크기를 30제곱미터로 제한할 수 없습니다. 대법원은
"분묘의 수호 및 제사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분묘 기지 주쥐의 공지를 포함한 지역에까지 미친다"
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레석이나 상석, 비석을 포함해 30제곱미터를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대 분묘를 수호하고 봉사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범위가 아니라면 분묘의 확장이나 석물 등의 설치, 분묘 전면의 석축공사 등은 허용되지 않는다."
고 대법원의 판시가 있습니다.
· 토지소유자가 지료나 분묘굴이 청구할 경우
1. 토지소유자는 일단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경우 이를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1단계로 지료결정청구소송을 해서 지료의 결정을 받아야 합니다.
2. 지료를 2년 이상 연체했음을 이유로 분묘굴이청구소송을 진행합니다. 위 소송은 순차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 토지 소유자와 분묘기지권자 사이에 약정된 지료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지료결정청구소송의 진행 없이 분묘굴이청구소송만 진행해 해당 지료를 2년 이상 연체했다는 사실만 입증함으로써 분묘기지권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타인 소유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분묘를 설치하건, 자기 소유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토지를 양도하면서 분묘를 이장하겠다는 특약을 하지 않아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경우는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때부터 분묘기지권자의 지료 지급 의무가 발생하는 반면,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한 경우(타인 소유의 토지에 승낙 없이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점유)는 토지 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한 날부터 분묘기지권자의 지료 지급 의무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토지소유자는 분묘기지권 시효취득의 경우에는 분묘기지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즉시 지료를 청구해야 보다 빨리 분묘굴이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 분묘기지권자가 토지소유자로부터 지료나 분묘굴이청구를 받았을 경우
분묘기지권자가 토지소유자와 토지를 무상으로 이용하기로 하는 내용의 합의를 한 경우에는 토지소유자에 대해 토지 무상 사용에 관한 합의에 관해 적극적으로 주장해 토지소유자의 지료 청구를 기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토지를 무상으로 이용하기로 하는 합의가 없는 한, 이 경우 분묘기지권자는 지료를 2년 이상 연체하지 않도록 유의해 분묘굴이청구가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분묘기지권자는 지료에 대한 감정 진행 과정에서 토지의 이용가치가 낮은 점, 주변 토지의 시세가 낮은 점 등을 주장해 되도록 낮은 액수의 지료가 정해질 수 있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토지소유자가 봉분 근처에 염소를 풀어두어 염소가 봉분 위에서 뛰어놀면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동영상을 촬영한 후 이를 분묘기지권을 주장하는 측에게 보내어 이장을 하도록 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염소들이 분묘를 훼손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분묘기지권자는 토지소유자와 바로 분묘의 이장을 협의하기보다는 토지 소유자가 고의로 염소를 풀어두었다는 점과 관련한 증거를 수집해 토지소유자를 상대로 분묘기지권 행사를 방해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염소들이 분묘를 훼손하기까지에 이르렀다면 토지소유자를 분묘 발굴죄로 고소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